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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1일 일요일

명작스캔들: 로댕의<칼레의 시민>




[스캔들 1] 로댕의<칼레의 시민>은 칼레 시민들을 화나게 했다?
-<칼레의 시민>을 보고 칼레 시민들이 격렬하게 항의한 이유는?

근대 조각의 아버지 로댕. 그의 작품 <칼레의 시민>은 14세기 백년전쟁 때 프랑스의 칼레시를 구한 숭고한 영웅들의 기념상이다. 그런데 <칼레의 시민>은 칼레 시민들을 모욕한 작품이다? 로댕은 1884년 칼레시로부터‘칼레의 영웅들’을 기리기 위한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칼레시는 백년 전쟁 당시 영국군으로부터 시민 모두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때 시장을 비롯한 시민 대표 6명이 교수형을 각오하고 스스로 목에 밧줄을 감고 나오면서 시민들은 살아날 수 있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은 바로 그 순간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그런데 로댕의 작품은 시민들이 생각했던 영웅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는데... 힘차고 당당한 모습의 영웅이 아닌 죽음을 눈앞에 둔 불안과 절망에 찬 모습으로 표현되었던 것. 기대했던 것과 다른 영웅의 모습에 시민들은 외면해 버리고 결국 <칼레의 시민>은 칼레 시청 광장이 아닌 다른 곳에 세워졌다. 과연 로댕이<칼레의 시민>을 통해 나타내고자 것은 무엇일까? <칼레의 시민>에 숨겨진 뒷이야기를 파헤쳐본다.



[스캔들 2] 차이콥스키의 <비창>은 그의 죽음을 예견했다?
-암울한 4악장, 그의 죽음이 드리워져 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 6번 <비창>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그런데 <비창>은 그의 죽음을 예견했다? 1893년 10월, 차이콥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의 지휘로 <비창>을 초연 한 후, 9일 만에 급사했다. <비창>은 그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비창>을 작곡할 당시 자신의 오랜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과의 연락도 끊어지고, 그가 가장 아꼈던 동생 알렉산드라의 죽음으로 그는 몹시 힘들어했다. 그의 우울함에서 비롯된 듯 깊은 슬픔과 처절한 통곡이 느껴지는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 죽음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차이콥스키가 동생에게“이 최후의 교향곡이 마치 나 자신을 위한 진혼곡처럼 느껴진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평생 우울하게 살았던 차이콥스키. 자신의 인생 자체를 음악으로 표현한 교향곡 제 6번<비창>에 숨겨진 스캔들을 취재했다.



오늘 명작스캔들의 주제는 "break through" 인 듯하다...
멋지네~
훌륭한 연구도 이렇게 후세에 더 유명해지는건가...